이 글에서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어떻게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보고, 단순한 행운과 과학적 발견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었는지를 과학사 사례를 통해 차분히 짚어본다.
과학은 흔히 치밀한 계획과 정확한 계산의 산물로 여겨진다. 실험실에서는 가설이 세워지고, 변수는 통제되며, 결과는 예측 가능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과학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이상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장면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위대한 발견의 시작점에는 종종 실수, 실패, 그리고 우연이 자리하고 있다. 연구자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 버려질 뻔한 실험 데이터, 혹은 사소한 관찰 하나가 인류의 삶을 바꿔놓은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1. 실패한 실험에서 인류의 생명을 구하다: 페니실린의 발견
1928년,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실험실에서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휴가를 다녀온 그는 실험실 책상 위에 방치된 배양 접시를 정리하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세균이 빽빽하게 자라 있어야 할 접시 한가운데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그 곰팡이 주변으로는 세균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이는 명백한 실험 실패였다. 외부 오염으로 인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라면 이 접시를 그대로 폐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플레밍은 이 ‘이상한 실패’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는 곰팡이 주변에서만 세균이 자라지 않는 현상에 주목했고, 이 곰팡이가 어떤 물질을 분비해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
이렇게 발견된 물질이 바로 페니실린이다. 이후 여러 과학자의 연구를 거쳐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페니실린은 감염병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던 시대를 끝내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례는 우연한 발견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자, 과학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2. 군사 실험 중 녹아버린 초콜릿: 전자레인지의 탄생
전자레인지는 오늘날 가장 일상적인 가전제품 중 하나지만, 그 출발점은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레이더 기술과 마이크로파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퍼시 스펜서 역시 이러한 연구에 참여하던 엔지니어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실험 장비 앞에서 작업을 하던 중,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초콜릿 바가 녹아버린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실험 장비에서 방출되는 마이크로파가 초콜릿을 녹였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옥수수 알을 장비 근처에 두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이 튀면서 팝콘이 되었다.
이 사소한 관찰은 ‘마이크로파로 음식을 데울 수 있다’는 발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전자레인지 개발의 출발점이 되었다. 군사 기술 연구 중 발생한 우연한 사건이,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발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3. 실패작으로 취급되던 접착제: 포스트잇의 시작
과학과 기술의 역사에는 ‘쓸모없는 실패작’으로 분류되었다가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은 사례들이 적지 않다. 포스트잇 역시 그러한 발명품 중 하나다. 1960년대, 3M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매우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그의 기대와 정반대였다. 접착력은 약했고, 쉽게 떨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이는 분명한 실패였다. 강력한 접착제가 필요한 산업 현장에서 이 물질은 쓸모가 없어 보였다.
이 접착제가 다시 주목받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몇 년 후, 같은 회사의 연구원이 찬송가 책에 책갈피로 사용해 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떼었다 붙여도 종이를 손상시키지 않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포스트잇은 ‘실패한 실험’이 아닌, 새로운 용도를 가진 혁신적인 제품으로 재탄생했다.
4. 빛 없이 드러난 흔적: 방사능의 발견
1896년, 프랑스의 과학자 앙리 베크렐은 형광 물질이 빛을 받으면 어떤 현상을 보이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우라늄 화합물을 사진 건판 위에 올려두고 햇빛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준비했지만, 날씨가 흐려 실험을 미루게 된다.
며칠 뒤, 그는 실험을 다시 진행하기 위해 건판을 확인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햇빛에 노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건판에는 뚜렷한 감광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베크렐은 반복 실험을 통해 이 현상이 외부 빛 때문이 아니라, 우라늄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 우연한 관찰은 방사능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이후 원자 물리학과 현대 과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방사능은 위험성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의료·에너지·과학 연구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5. 우연과 발견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
이러한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드러난다. 우연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모든 우연이 발견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실험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을 때, 그것을 단순한 오류나 실패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지는 연구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과학에서 우연은 계획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라는 질문이 있을 때, 우연은 의미를 갖는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우연은 지나가는 사건에 불과하지만, 준비된 사람에게 우연은 새로운 발견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지금의 상식도 우연에서 바뀔 수 있다
과학사는 완벽하게 설계된 직선의 역사라기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연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기록에 가깝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지식과 기술 역시, 누군가의 실수와 실패,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은 관찰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가 ‘틀렸다’고 판단하는 결과 속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과학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 불완전함에 있다. 우연을 질문으로 바꾸는 순간, 과학은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