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는 믿음이 만든 오해들
이 글에서는 과학 발전을 늦추거나 방향을 틀어버렸던 대표적인 편견과 상식들을 살펴본다
과학은 언제나 합리와 증거 위에서 발전해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 과학은 종종 이성보다 익숙함에 더 강하게 묶여 있었다. 많은 과학적 오류는 무지에서 비롯되기보다, 오히려 ‘너무 당연해 보이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상식,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 전제가 새로운 질문을 가로막았고, 그 결과 과학의 진보는 오랫동안 지체되었다.
핵심은 누가 틀렸는지가 아니라, 왜 그 생각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는가이다. 과학의 역사는 틀린 생각을 제거해 온 기록이자, ‘당연함’을 의심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연대기다.

1. “무거운 물체는 더 빨리 떨어진다”는 상식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는 생각은 의심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는 일상 경험과도 잘 들어맞는 설명이었다. 돌을 떨어뜨리면 깃털보다 빨리 땅에 닿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의해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었고, 그의 권위는 이후 수백 년 동안 의심받지 않았다. 문제는 이 설명이 실험이 아니라 경험적 직관과 철학적 논증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무도 동일한 조건에서 물체를 떨어뜨려 비교해 보려 하지 않았다.
갈릴레오는 이 ‘당연한 상식’을 의심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물체의 낙하 속도가 무게가 아니라 가속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설을 세웠고, 실험을 통해 이를 검증하려 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물리 법칙의 수정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의 전환을 의미했다.
이 사례는 상식이 얼마나 쉽게 관찰을 가로막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너무 당연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2. 질병은 ‘나쁜 공기’에서 온다는 믿음
전염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질병이 악취나 부패한 공기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이른바 ‘미아즈마 이론’은 오랫동안 의학의 기본 전제였다.
이 이론은 직관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로 악취가 심한 지역에서 질병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해석이었다. 위생 상태가 나쁜 환경에서 악취와 질병이 동시에 나타났을 뿐, 공기 자체가 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다.
미아즈마 이론은 공중보건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 정비와 냄새 제거에는 집중했지만, 병원체를 차단하는 개념은 발전하지 못했다. 세균설이 제기되었을 때조차 많은 의사들은 이를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치부했다.
이 상식은 질병의 원인을 ‘환경의 분위기’로 환원시켜 버림으로써,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받아들이는 데 큰 장벽이 되었다.
3.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확신
‘원자(atom)’라는 단어는 그 어원부터가 하나의 편견을 품고 있다. 고대 그리스어 아토모스(atomos)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물질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직관적인 설명으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 근대 과학이 등장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세기 말까지 과학자들은 원자를 물질의 최종 단위로 간주했고, 그 내부 구조를 굳이 상상하려 하지 않았다.
이 확신이 더욱 공고해진 이유는 화학의 눈부신 성공 때문이었다. 원소와 화합물, 화학 반응은 원자의 결합과 분리만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해 보였다. 실험 결과는 이 이론과 잘 들어맞았고, 더 깊이 파고들 이유는 없어 보였다. ‘이미 잘 작동하는 설명’은 과학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 된다.
문제는 이 확신이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기 시작했을 때 드러났다. 전자의 발견, 방사능 현상, 에너지 방출 문제는 기존의 원자 개념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원자는 비어 있지 않았고, 내부에는 더 작은 입자와 복잡한 구조가 존재했다. 원자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 편리한 가정이었던 셈이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과학적 오류가 무지에서가 아니라 성공 경험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원자 개념은 틀렸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의심받지 않았다. 과학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설명이 실패할 때가 아니라, 설명이 너무 잘 작동할 때다.
4.인간의 뇌는 성인이 되면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
오랫동안 신경과학과 의학계에서는 인간의 뇌가 성인기에 접어들면 구조적으로 고정된다고 믿었다. 어린 시절에는 발달이 이루어지지만, 이후에는 기능의 미세한 조정만 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이 믿음은 해부학적 관찰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다. 성인의 뇌 구조는 겉보기에는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식은 단순한 학설에 그치지 않고, 의료와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뇌 손상 환자에 대해서는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특정 뇌 영역이 손상되면 그 기능은 영구적으로 상실된다고 여겨졌고, 재활은 보조적 수단에 불과했다. 연구 역시 ‘회복’보다는 ‘적응’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에 대한 연구는 이 믿음을 근본부터 흔들었다. 뇌는 경험과 학습, 환경 자극에 따라 신경 연결을 새롭게 만들고 재구성할 수 있었다. 심지어 손상된 기능이 다른 영역으로 이전되기도 했다. 성인의 뇌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믿음이 오랫동안 유지된 이유는 뇌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관찰할 도구와 관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기술의 한계가 곧 이론의 한계로 오해된 셈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상식은 뇌를 설명하기에는 편리했지만, 뇌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
상식을 의심하는 것이 과학의 출발점이다
앞선 사례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과학 발전을 가로막았던 믿음들은 결코 비이성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대 기준에서는 매우 합리적이었고, 경험과 관찰에 기반한 상식이었다. 문제는 그 상식이 질문을 멈추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 ‘질병은 나쁜 공기에서 온다’, ‘원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다’, ‘뇌는 성인이 되면 고정된다’는 생각들은 모두 자연스럽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생각은 실험의 대상이 되지 않고, 검증의 목록에서 빠져버린다.
과학은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는 작업이라기보다, 오래된 전제를 하나씩 제거하는 과정에 가깝다. 혁신은 언제나 “이게 틀렸다”라는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대신 “왜 우리는 이걸 당연하다고 믿어왔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는 회의주의가 아니라, 과학의 기본 윤리다. 오늘날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수많은 설명들 역시, 언젠가는 수정되거나 폐기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과학이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당연함을 잠시 멈추고 바라보는 용기다.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사고의 고착이다. ‘당연하다’는 말은 질문을 끝내는 가장 강력한 문장이다.
과학의 역사는 이 문장을 얼마나 자주 의심해 왔는가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우리의 상식 역시, 언젠가는 다음 세대의 교과서에서 ‘오해’로 정리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