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떠 창조된 특별한 존재인가, 아니면 수십억 년에 걸친 우연과 적응이 만들어낸 생명계의 일원인가?" 이 질문은 인류가 자아를 인식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철학적 고뇌이자 과학적 격전지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 인류는 자신의 뿌리를 신학의 영역에서 생물학의 영역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이 논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종교적 신념을 과학적 언어로 포장한 '지적 설계론'은 현대 과학의 틈새를 공략하며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다윈의 혁명적 사상부터 현대 분자생물학이 밝혀낸 진화의 증거, 그리고 창조론의 논리적 허점을 파헤쳐 본다.

2. 찰스 다윈의 혁명: 자연선택이라는 엔진
2-1. 갈라파고스에서 찾은 열쇠
찰스 다윈 이전에도 생물이 변한다는 생각은 존재했다. 하지만 '어떻게' 변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이는 다윈이 유일했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전 세계를 항해하던 중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들에게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다. 섬마다 먹이 환경이 달랐고, 그에 맞춰 새들의 부리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딱딱한 씨앗을 먹는 섬의 새들은 부리가 두껍고 강했으며, 선인장 꽃의 꿀을 먹는 섬의 새들은 부리가 길고 날카로웠다. 이는 생물이 환경에 맞춰 '설계'된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합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그 형질을 대물림했다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증거였다.
2-2. 적자생존과 종의 분화
다윈은 무작위적인 변이가 발생하고, 그중 생존에 유리한 변이가 보존되는 과정이 수백만 년간 반복되면서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이는 생명의 역사를 거대한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로 묘사하게 만들었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뻗어 나온 가지라는 이 선언은 당시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창조관을 뿌리째 흔들었다.
3. 창조론의 진화 : 지적 설계론
현대의 창조론은 단순히 성경 구절을 읊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과학의 언어를 빌려와 '지적 설계론'이라는 정교한 논리를 구축했다.
3-1.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마이클 비히와 같은 지적 설계론자들은 쥐덫을 예로 든다. 쥐덫은 받침대, 스프링, 고정핀 등 모든 부품이 한꺼번에 있어야 제 기능을 한다. 부품 하나가 부족한 상태로는 쥐를 잡는 기능을 조금도 수행할 수 없다. 생명체 내부의 단백질 합성 기제나 인간의 정교한 눈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없으면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는 이런 구조는 단계적인 진화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처음부터 지적인 존재에 의해 설계되어야만 한다는 논리다.
3-2. 확률적 불가능성
그들은 단백질 하나가 우연히 합성될 확률을 '고물상에 태풍이 불어 보잉 747기가 저절로 조립될 확률'에 비유한다. 수조 개의 세포와 복잡한 신경망을 가진 인간이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로 탄생했다는 것은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핵심 주장이다.
4. 현대 과학이 내놓은 압도적 반증
4-1. 유전학의 승리: DNA라는 설계도
다윈 시대에는 유전의 원리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DNA 구조가 밝혀지면서 진화론은 가설이 아닌 사실로 굳어졌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 염기서열은 약 98.8%가 일치한다. 심지어 인간은 초파리와도 유전자의 60%를 공유한다. 이는 모든 생명체가 같은 언어로 쓰인 '생명의 설계도'를 공유하고 있음을 뜻하며, 공통 조상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분자생물학적 증거다.
4-2. 화석 기록의 연대기: 전이 형태의 발견
창조론자들이 즐겨 쓰던 비판 중 하나는 "중간 단계 화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 고생물학은 그 빈틈을 메워가고 있다.
- 틱타알릭(Tiktaalik): 어류와 육상 동물의 중간 형태인 이 화석은 지느러미 속에 손목 관절과 발가락 뼈를 가지고 있었다.
- 아르키옵테릭스(시조새): 파충류의 꼬리와 이빨을 가졌으면서도 조류의 깃털을 가진 이 존재는 공룡이 새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산증거다.
- 고래의 진화: 고래의 조상이 육지를 걷던 네 발 짐승이었다는 사실은 골반 뼈의 흔적이 남은 화석 시리즈를 통해 완벽히 입증되었다.
4-3. '설계의 오류'가 증명하는 진화
만약 전지전능한 설계자가 인간을 만들었다면 저지르지 않았을 '설계적 결함'이 우리 몸에 가득하다.
- 되돌이후두신경: 뇌에서 나와 후두로 가는 이 신경은 바로 옆인데도 불구하고 심장 근처 대동맥을 돌아 한참을 우회한다. 기린의 경우 이 신경의 길이는 수 미터에 달한다. 이는 어류 시절의 신경 구조가 진화 과정에서 퇴화하지 못하고 길게 늘어난 결과다.
- 인간의 척추: 네 발로 걷던 동물이 갑자기 직립보행을 하면서 우리 척추는 엄청난 하중을 견뎌야 하는 구조적 결함을 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인간은 고질적인 디스크 질환에 시달린다. 이는 완벽한 설계보다는 '기존 모델의 임시방편적 수정'인 진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5. 종교와 과학의 공존: 유신론적 진화론
현대의 많은 종교인과 과학자들은 이 둘이 반드시 배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황청을 비롯한 주요 종교 단체들은 '진화는 신이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라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수용하고 있다. 과학은 생명이 '어떻게(How)' 변화했는지를 설명하고, 종교는 생명이 존재하는 '의미(Why)'를 설명하는 상호 보완적인 체계라는 시각이다.
6. 진화는 더 이상 가설이 아니다
진화론은 이제 단순히 믿음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매년 새로운 독감 백신을 만들고, 유전병을 치료하며, 생태계를 보존하는 현대 과학의 가장 강력한 토대다. 지적 설계론은 복잡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경외심을 자극하지만, 그 경외심의 실체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수십억 년의 시간이 빚어낸 인내와 적응의 산물이다.
우리가 진화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위대한 연대감을 깨닫고, 그 속에서 인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진화라는 장엄한 드라마 속에서 인류는 주인공이 아니라, 이제 막 등장한 겸허한 관찰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